반복된 훈련은 신체를 바꾼다···적응의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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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겨울 바다, 수온은 영상 10도 아래로 떨어진다. 검은 물속으로 고무옷을 입은 여성이 조용히 몸을 던진다. 숨을 들이마시고, 아무 장비 없이 가라앉는다. 그녀의 나이는 일흔둘. 이 해녀는 몇 분 뒤 전복 한 마리를 들고 다시 수면 위로 오른다.
놀라운 건 체력만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이 여성의 심장은 수중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천천히 뛴다. 혈압은 비정상적으로 높지만, 그 상태가 오히려 위험을 줄인다. 수십 년간의 잠수 훈련이 그녀의 심박 리듬과 혈관 반응을 재설계한 것이다.
이건 단지 특이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된 훈련과 환경 노출이 실제로 인간의 생리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있다. 훈련은 근육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의 크기와 유전자 발현까지 바꾼다. 인간의 몸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적응하고 진화하는 구조다.
수십 년의 잠수가 만든 느린 심장 – 제주 해녀의 생리학적 재구성
2025년, 미국 유타대 멀리사 일라르도 교수팀은 제주의 해녀들을 대상으로 생리적·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과학저널 ‘Cell Report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제주 구좌읍 하도리 해녀 30명과 일반인을 비교했다.
해녀들은 물속에 들어가면 심박수가 극적으로 감소하는 서맥 반응을 보였다. 이 반응은 수중에서 산소 소비를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인 잠수 반사(dive reflex)보다 뚜렷하고 안정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완기 혈압은 평균보다 높았는데, 이는 해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생리적 특성이었다.
유전체 분석에서는 이완기 혈압을 조절하고 염증 반응을 제어하는 유전자 발현 패턴이 발견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특성이 단순한 훈련 효과를 넘어, 반복된 수중 생활이 해녀들의 생리 체계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킨 결과라고 해석했다.

제주 해녀의 반복된 무호흡 잠수가 유발한 생리적 적응(서맥, 높은 이완기 혈압)과 유전적 변화(선택 신호)를 요약한 연구 이미지. 하단 그래프는 유전적 군집, 자연선택 스캔, 적응형 표현형의 통계적 차이를 나타낸다.
[사진=Cell Reports]
장기의 크기를 바꾼 집단 – 바자우족의 비장 적응
인도네시아 바다를 삶터로 삼는 바자우족은 하루 평균 5시간 이상을 수중에서 보낸다. 무호흡 잠수로 물고기와 조개를 채취하는 이들에게는 특이한 신체 구조가 있다. 바로 비장의 크기다.
2018년, 《Cell》지에 발표된 연구에서 코펜하겐대 연구진은 바자우족의 비장이 일반인보다 약 50% 더 크다는 사실을 밝혔다. 비장은 산소가 부족할 때 적혈구를 혈류로 방출하는 저장소 역할을 한다. 큰 비장은 무산소 상태에서 더 많은 산소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

인도네시아의 바자우족은 무호흡 잠수로 어로 활동을 한다. 하루 시간 중 약 60%를 물속에서 보내며, 총 수중 활동 시간이 5시간 이상에 달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진=Cory Richards/National Geographic Image Collection/Alamy]
또한 PDE10A라는 유전자의 변이가 바자우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이 유전자는 갑상선 기능을 조절하며 비장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이가 수세대에 걸쳐 지속된 수중 활동의 자연 선택 압력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바자우족은 반복된 행동이 유전적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보기 드문 사례다.
산소 없이 숨 쉬는 기술 – 셰르파족의 고산 적응
네팔 히말라야 고지대의 셰르파족은 해발 4000미터 이상의 산악 환경에서 살아간다. 산소 농도가 평지의 절반 수준인 이 환경에서 셰르파들은 무리 없이 생존하고 고산 등반을 수행한다.
2017년, PNAS(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셰르파족은 EPAS1 유전자의 특이한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 유전자는 산소 부족 상황에서 혈액 내 산소 운반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일반인은 고산에서 헤모글로빈 농도를 높여 산소 운반을 보완하지만, 셰르파는 높은 효율로 산소를 이용하면서도 혈액 점도 상승에 따른 건강 위험을 피한다.

히말라야 고산 지역에 거주하는 셰르파족은 EPAS1 유전자 변이 덕분에 낮은 산소 농도에서도 헤모글로빈 수치 증가 없이 산소를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고산 적응의 대표 사례로 연구되고 있다. [사진=ooaworld]
이러한 특성은 반복된 고산 생활과 유전적 선택이 결합된 결과로, 인간이 산소 부족 환경에서도 생리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적응의 경계선 – 시몬 마누엘과 과훈련 증후군
훈련은 신체를 변화시킬 수 있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미국 수영 국가대표 시몬 마누엘은 2021년, '과훈련 증후군(Overtraining Syndrome)' 진단을 받았다.
이 증후군은 회복 없이 반복된 고강도 운동이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를 붕괴시키는 상태다. 마누엘은 수면장애, 심박수 증가, 집중력 저하, 우울감을 겪었고, 경기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장기간의 휴식과 강도 조절을 통해 회복해야 했다.

과도한 훈련으로 회복이 무너진 상태인 ‘과훈련 증후군(Overtraining Syndrome)’. 만성 피로, 심박수 증가, 운동 능력 저하 등의 증상을 유발하며, 회복에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사진=hss.edu]
이 사례는 인간의 적응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훈련은 생리적 변화를 유도하지만, 회복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신체는 역행할 수 있다.
생리학과 유전학은 인간 신체가 여전히 진화 중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반복은 구조를 바꾸고, 구조는 기능을 다시 정의한다. 인간의 몸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스템인 셈이다.
현재도 인간의 신체가 반복된 환경 노출이나 훈련에 따라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살피는 연구는 이어지고 있다. 미국 해군 잠수요원 훈련생의 산소 보존 능력, 장거리 극지 탐험가들의 체온 조절 변화, 장기 우주 체류 중인 우주비행사의 심혈관 반응 등이 관찰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단일한 유전적 특성보다, 반복된 조건이 인체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참조 논문
- Genetic and training adaptations in the Haenyeo divers of Jeju, Korea
- Physiological and Genetic Adaptations to Diving in Sea Nomads - PubMed
- Metabolic basis to Sherpa altitude adaptation | P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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