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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대륙의 발견과 탐험 역사

과학 상식

남극대륙의 발견과 탐험 역사

sciencewave 2025. 5. 1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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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에 처음 알려지고

탐험이 시작된 남극대륙

남극대륙은 유럽대륙보다 크고, 오스트레일리아 면적의 2배 정도 된다. 남극대륙의 98%는 얼음으로 덮여 있으며, 그 얼음 두께는 평균 1,600m 정도이다. 남극의 1년 강수량은 20mm 이내이므로 사막에 속하며, 최저 기온은 -89℃에 이른다. 이런 악조건 때문에 19세기말까지는 접근조차 하기 어려웠던 곳이다.

역사상 가장 이름난 항해자의 한 사람인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은 1768년 5월 말, 영국 왕립학회로부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 남태평양으로 먼 항해를 떠났다. 천체관측 기술을 가졌던 그의 임무는 다음해 6월 초, 금성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날 때를 맞추어 금성식(金星蝕)을 관측하는 것이었다. 금성식은 금성이 태양 정면을 통과할 때, 태양 면에 작은 점(금성의 그림자)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상의 서로 다른 위치에서 금성식을 동시에 관측하여 결과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여러 나라가 해양탐험 경쟁을 벌이던 당시였으므로 태양까지의 정확한 거리를 아는 것은 원항(遠航)에 꼭 필요한 정보였다.

 

쿡이 승선한 ‘인데버’(Endeavour)호는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 1769년 4월 중순에 목적지 타이티 섬에 도착했다. 인데버호가 항해한 거리는 지구 반 바퀴에 해당했다. 쿡은 해변에서 금성식을 관측하기 좋은 위치를 물색하여 그 지점을 ‘포인트 비너스’(Point Venus)라 부르고 그 자리에 관측장비를 설치했다. 타이티 섬의 포인트 비너스는 지금도 역사적인 장소로 남아 있다.

 

남극을 찾는 최초의 모험

인데버 호에는 밀봉된 왕실의 비밀 명령서가 실려 있었다. 그것은 금성식 관측을 마친 뒤, 당시 선원들 사이에 소문으로 돌던 오스트레일리아 남쪽 바다에 있을지 모르는 대륙을 찾아내어 탐험하라는 것이었다. 관측을 끝낸 인데버 호는 명령서대로 즉시 출항하여 다시 남쪽으로 항해했다. 1771년 1월 남극대륙으로부터 121km(훗날 추정) 지점까지 접근했으나 추위와 기상 악조건으로 도저히 더 이상 남극 쪽으로 근접 수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인데버 호는 출항 3년만인 1771년 8월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쿡 선장이 귀국했을 때, 귀족이며 식물학자이던 젊은 뱅크스(Joseph Banks, 1743-1720) 경이 새로 건조한 ‘HMS 레절루션’(Resolution) 호를 타고 남극대륙 찾아나서려 하고 있었다. 쿡의 귀국을 알게 된 뱅크스 경은 쿡을 탐험선의 선장으로 임명했다. 쿡은 귀국하고 1달로 안 되어 다시 남극대륙 탐험에 나섰다. 두 번째 항해에서 쿡은 아프리카 대륙 남단을 지나 1773년 초에 남극권 가까이까지 갔으나 수많은 빙산과 추위, 안개, 강풍, 파도와 같은 악천후 때문에 이번에도 더 이상 접근이 불가능했다.

 

쿡 선장 일행은 1774년 말 영국으로 귀항하던 길에 남아메리카 남단에서 빙하로 뒤덮인 땅을 발견하고, 그 섬이 그 동안 찾으려 했던 미지의 대륙일지 모른다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그러나 대륙이 아니라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당시 영국 왕 조지 3세의 이름을 따서 ‘조지아 섬’이라 불렀다.

 

그는 항해일지에 당시의 힘든 항해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기록했다. “남반구 고위도에서 더 남쪽으로 가려 했으나 그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미지의 대륙은 분명이 남극권 안에 있을 것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나보다 더 남쪽으로 항해하는 것은 누구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대륙은 탐험되지 못한 상태로 눈과 얼음에 덮여 영구히 있어야 할 것이다. 이곳의 짙은 안개, 눈 폭풍, 극심한 추위는 극복할 수 없는 공포이다.”

 

쿡 선장의 모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820년에 러시아의 탐험대가 남극대륙 32km 지점까지 접근하여 그 존재를 드디어 확인했다. 그리고 1838~1843년에는 미국의 과학자로 구성된 탐험대가 남극대륙에 드디어 상륙하여 일부를 탐험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남극점까지 탐험하는 데는 더 시간이 걸렸다. 남극점은 해안으로부터 약 1,300km 떨어진 고도(高度)가 3,000m 정도 되는 곳에 있었다.

남극대륙의 탐험 경쟁

이때부터 남극대륙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탐험대가 경쟁적으로 찾아왔고, 1900년대 초에는 스콧(Robert F. Scott, 1868-1912), 섀클턴(Ernest Shackleton, 1874-1922),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 등이 이끈 탐험대가 남극점을 정복하고 남극대륙 횡단에도 성공했다. 이때 남극에 연구기지를 세운 나라들은 남극대륙을 쪼개어 그들의 영토라고 선언하자, 국제적 분쟁이 발생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여년이 지난 1954년, 남극탐험에 참여했던 12개국 대표가 모여 남극조약을 체결하면서 남극에 대한 영유권 주장, 군사 활동, 광물채취, 핵실험, 핵폐기물 반입 등을 금지하고, 남극대륙에서는 인류 공동의 평화와 복지를 위한 과학연구와 환경보호 활동만 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현재, 남극협정에는 49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으며, 각 나라가 여기저기 세운 과학기지에서는 모두 4,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은 남극에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 두 곳을 세워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북극에는 2002년에 설립한 다산과학기지가 노르웨이령 스피스베르겐 섬에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碎氷) 연구선 ‘아라온’호는 남북극을 오가며 극지의 환경과 생태계를 조사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이런 남극대륙까지 모험심 강한 관광객과 과학자들이 큰 어려움 없이 오게 되었다.

 

현재 약  50척의 크고 작은 특수 관광선이 남아메리카 대륙 남단의 항구를 출발하여 길게 뻗어 나와 있는 남극반도까지 최단거리 960km를 오가고 있다. 여름 계절 동안 매년 약 45,000명의 관광객이 남극대륙을 찾으며, 그들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일어나는 빙하의 붕괴와 빙산들을 직접 보고 간다. 약 48시간이 걸리는 항해시간 동안 심한 바람과 파도를 넘어야 하지만 간혹 호수처럼 잔잔할 때도 있다 한다.

 

1977년에 뉴질랜드 항공사는 남극대륙 상공을 비행하는 관광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979년에 257명을 태운 비행기가 뉴질랜드가 세운 스콧 기지 가까이 있는 에레부스(Erebus) 산과 충돌하여 모두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항공사업은 중단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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